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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탐지기의 오류율과 그 과학적 허상

by chocov 2025. 4. 9.

거짓말 탐지기의 원리: 심박수와 땀으로 진실을 알 수 있을까?

거짓말 탐지기, 흔히 폴리그래프라 불리는 이 장치는 흔히 영화나 드라마에서 범죄자의 진술을 검증하는 수단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이 장치는 정말로 ‘거짓말’을 감지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폴리그래프는 거짓말 자체를 감지하지 못한다. 단지, 거짓말을 할 때 나타날 수 있는 생리적 반응의 변화를 측정할 뿐이다.

폴리그래프는 기본적으로 네 가지 생리 반응을 측정한다.

  • 심박수
  • 혈압
  • 호흡 패턴
  • 피부전도도(땀의 분비량과 관련)

이 수치를 기반으로 사람이 특정 질문에 답변할 때 긴장하거나 불안을 느끼는지를 파악하고, 그 반응이 ‘정상 범위’에서 벗어나면 거짓말 가능성이 있다고 간주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가장 큰 문제가 발생한다. 바로, “거짓말”이라는 심리적 행위와 생리 반응 사이에 명확한 인과관계가 없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어떤 이는 단순히 상황이 긴장되어 있거나, 질문 자체가 민감하게 느껴져서 생리 반응이 강하게 나타날 수 있다. 반대로, 숙련된 범죄자나 사이코패스는 아무리 거짓말을 해도 생리적 반응이 거의 없는 경우도 많다. 즉, 폴리그래프는 거짓말을 ‘추정’할 뿐, 결코 ‘증명’하지 못한다.

거짓말 탐지기의 오류율과 그 과학적 허상
거짓말 탐지기의 오류율과 그 과학적 허상

과학적 신뢰도 논란: 거짓말 탐지기의 오류율은 어느 정도인가?

미국심리학회(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는 폴리그래프 검사에 대해 매우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실제로 2003년 미국 국립과학아카데미(National Academy of Sciences)는 보고서를 통해 폴리그래프의 신뢰성을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폴리그래프는 심문 도구로서 어느 정도 활용 가능하지만, 과학적으로 검증된 고신뢰의 거짓말 판별 도구로는 부적합하다.”

폴리그래프의 오류율은 상황과 질문의 종류에 따라 달라진다. 일반적으로 정확도는 60~85% 사이로 추정되는데, 이는 통계학적으로 상당히 낮은 수치다. 특히 “거짓말을 진실로 판단하는 오류(False Negative)”나 “진실을 거짓으로 판단하는 오류(False Positive)” 모두 빈번히 발생한다.

무고한 사람이 강한 긴장 상태에 빠지면 거짓말로 오인될 수 있다.

실제 범인은 침착한 태도를 유지하면 진실을 말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감정 기복이 심한 사람, 불안 장애가 있는 사람, PTSD 환자 등은 높은 오진률을 보인다.

또한, 폴리그래프 검사는 검사자의 질문 능력, 해석 방식, 주관적 판단에 영향을 크게 받는다. 동일한 반응 패턴을 놓고도 두 검사자가 서로 다른 결론을 내릴 수 있다는 점은, 과학적 객관성이라는 기준에서 매우 치명적인 한계다.

이러한 문제로 인해 미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의 법원에서는 폴리그래프 결과를 정식 증거로 인정하지 않는다. 대한민국 역시 대부분의 재판에서 폴리그래프 결과는 참고자료로만 활용될 뿐, 판결의 결정적 요소로 사용되지 않는다.

심문 도구로서의 활용: 과학이 아닌 ‘심리적 압박’의 수단

그렇다면 왜 수사기관은 여전히 폴리그래프를 사용하고 있을까? 그 이유는 과학적인 정확도보다는 심리적 압박 효과에 있다. 피의자에게 “당신의 반응은 거짓말로 나타났습니다”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심리적으로 동요시키고, 자백을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수사기관은 폴리그래프를 ‘과학 장비’라기보다는 심문 기술의 일부로 활용한다. 거짓말을 감추기 어려운 상황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내는 장치인 셈이다. 하지만 이는 명백히 윤리적 문제를 동반한다.

무죄 추정의 원칙에 반하여 ‘거짓말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을 압박할 수 있다.

감정적으로 불안정한 사람을 ‘거짓말쟁이’로 몰아가며 인권 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

자백 강요 수단으로 오용될 경우, 허위 자백이나 강압 수사가 발생할 수 있다.

게다가 최근에는 “폴리그래프를 무력화시키는 방법”이 온라인 커뮤니티나 일부 책자를 통해 널리 알려져 있다. 예를 들어, 발끝에 바늘을 넣고 고통을 줌으로써 생리 반응을 왜곡하거나, 일정 호흡 훈련으로 땀과 맥박을 안정시켜 결과를 교란시키는 방식 등이 있다. 이런 방식들이 가능하다는 점은 폴리그래프가 본질적으로 과학적 신뢰성을 결여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결론: 거짓말 탐지기는 과학이 아니다
거짓말 탐지기는 ‘거짓말을 보이는 장치’가 아니다. 다만, 사람의 심리 상태를 일부 반영하는 생리 반응을 통해 간접적으로 추정할 수 있는 도구일 뿐이다. 이는 과학적 검증을 기반으로 하는 진실 판별 장치와는 거리가 멀다.

거짓말이라는 복잡한 심리적 행위를 단순한 숫자로 환원할 수 있다는 믿음 자체가 위험하다. 우리가 과학이라고 믿고 있는 폴리그래프는, 실상 심리적 효과에 기대는 구시대적 도구일 뿐이다.

진실은 숫자보다 더 복잡하다. 그래서 우리는 거짓말을 감별하려 할 때, 장치가 아니라 사실, 맥락, 인간의 심리 이해에 더 집중해야 한다.